[독일] 졸페라인 박물관(Zollverein), 탄광 건축물과 예술의 융합으로 재탄생한 과거 20170626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않기 위해 발전계획 수립
박동완 대기자
2024-05-03 오후 1:55:04
□ 탄광 건축물과 예술의 융합으로 재탄생한 과거
졸페라인 박물관(Zollverein)
Fritz-Schupp-Allee, 45141 Essen
Tel : +49 201 246810
 
독일       에센


◇ 빛을 잃은 석탄산업과 에센시

○ 독일 산업혁명과 ‘라인강의 기적’의 중심지로 알려진 루르 지방은 산업화 시대의 중심적 위치에서 독일 산업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한 지역이다. 특히 독일의 루르 지방은 행정구역 이름이 아닌, 탄광 시설을 중심으로 한 공업지역으로 묶인 독특한 지역이기도 하다.
 

▲ 졸페라인의 상징, 수직갱도[출처=브레인파크]


○ 루르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는 에센과 뒤스부르크인데 뒤스부르크가 철강도시라면 에센은 탄광도시이다. 당시 에센은 독일 최대 탄광도시이자 중공업의 중심지였다.

○ 유럽의 석탄산업을 이끌었던 독일은 최대 호황기를 누리던 1970년대 말에는 루르 지역에서만 연간 62억 3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13만 명에 달하는 노동력을 수용하던 거대한 중공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 하지만 석탄과 철강업 분야가 사향산업이 되어버린 1980년대부터는 이 지역들은 점차 쇠퇴하고 당시 운영되던 탄광들은 문을 닫고 일반인의 접근이 차단되었다.

◇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던 광산 졸페라인의 재탄생

○ 졸페라인(Zollverein) 광산은 독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탄광으로 1932년 근대적인 설계를 통해 구축한 ‘12번 수직갱도’가 건설되면서 유럽에서 가장 현대적이며 기능적 능률을 갖춘 규모면에서나 생산성면에서 유럽의 대표적인 탄광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석탄산업이 사향산업이 된 이후 졸페라인 역시 1986년 문을 닫고 일반인들의 접근이 금지된 지역이 되었다.

○ 에센시는 쇠퇴된 도시를 살리기 위해 축구 경기장 200개 정도로 약 100ha 규모의 졸페라인 탄광을 개조해 뮤지엄과 아트센터를 조성하고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거대한 굴뚝이 있는 보일러하우스를 ‘레드닷 디자인박물관’으로 변신시키며 도시의 활력을 되찾게 되었다.

○ 졸페라인 방문객은 연간 200만 명에 이르고 1,000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했으며, 특히 세계적으로 정평이 난 레드닷(Red Dot) 디자인상을 수여하는 레드닷협회 등 디자인회사도 입주하는 성과를 냈다.

○ 졸페라인 광산은 무용지물이 된 산업유산을 새로운 문화시설로 탈바꿈하여 석탄 대신 문화와 창조정신을 캐는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평가받는다.

◇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않기 위해 발전계획 수립

○ 1986년 졸페라인 광산이 더 이상 석탄 생산지의 역할을 하지 못하자 쓰레기 처리장으로 사용되었다. 쓰레기 처리장이 된 광산에 건축가‧역사학자들이 새로운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여 2001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 드넓은 부지에 건설된 졸페라인 전경[출처=브레인파크]

○ 광산의 건물들이 석탄 채굴 후 자연스럽게 무너질 수 있도록 설계된 탓에 쓰레기처리장으로 사용되면서 훼손이 심했고 15년에 걸쳐 복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이 지대를 활용할 방법에서 논의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에센의 새로운 산업으로 산업디자인을 유치하자는 것이었다.

○ 이러한 계획에 의해서 작은 회사들을 유치했고, 내년부터는 에센 폴크방 예술대학의 학과도 유치한다. 이러한 변화로 과거 탄광산업에서 산업디자인 산업으로 지역산업으로 변화‧발전시키고 있었다.

○ 하지만 단지 산업디자인을 지역의 새로운 먹거리로 창출하고자 이 탄광지역을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곳의 주민들이 가지는 자부심은 남부지방처럼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나 문화유산과는 다른 독일의 경제를 부흥시켰다는 자부심이기 때문에 그 자긍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이 탄광지역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건물의 폐쇄부터 재생까지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지속된 것을 보면서, 이러한 지역발전과 지역주민들을 위한 노력들이 건물 하나하나 깃들어있다.

◇ 기존 형태를 보존한 채로 문화예술공간 조성

○ 졸페라인 광산 크게 3구역으로 나누어져 재생되었는데, 주 채탄시설과 수직갱도현장을 보존한 수갱 12구역과 1·2·8구역, 그리고 코크스 가공공장인 코커라이이다.

○ 각 공간은 기존 형태와 외형, 녹슨 철 기둥과 붉은 벽돌 등이 고스란히 보존된 채로 박물관, 극장, 디자인스쿨 등의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 수갱 12구역은 루르박물관이 들어서 컨베이어벨트를 연상시키는 철골 유리박스의 에스컬레이터가 특징으로 건물 내부에는 옛 채탄흔적을 고스라이 간직한 시설물과 카페, 유물전시장과 360도 입체극장, 기념품 판매장, 전망대로 구성되었다.

○ 갱도에서 채굴한 석탄을 끌어올리는 거대한 권양탑은 현재와 과거를 하나로 묶어내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코커라이는 겨울철 제련시설의 냉각수 보관장소였는데 현재는 스케이트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 권력과 생산성을 상징한 광구와 건물들

○ 처음 간 곳은 건물 내에 있는 내부정원, 호프(Hof)라고 불리는 지역이었다. 몇 개의 호프가 있지만 그 중 호프 4번은 1932년도부터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출입문으로 사용되었고 방문하는 투자자, 정치가에게 공적인 의전행사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 벽돌로 건축된 건물은 기계만 있고, 근로자들의 출입이 금지되었던 지역이었다고 한다. 하루에 약 2,000톤이 기계에 의해 자동으로 생산되던 곳인 이 광구는 많은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석탄이 많이 생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오직 기계로 움직이기에 비용 대비 생산량이 비약적이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서 근로자의 출입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 당시 산업건축가로 유명한 젊은 건축가, 프리츠 슈프(Fritz Schupp)와 마틴 크래머(martin-Krämer)에 의해서 건축된 건물로 1928년부터 1938년 사이에 지어진 곳이다.

이 두 명의 건축가들은 인본주의와 민주주의적 건축양식인 바우하우스 양식으로 설계하였으나, 결과적으로 권력, 세력을 보여주는 건축물로 지어졌다.

○ 이 건물에서 눈여겨 볼만한 점은 두 가지가 있었다. 먼저 항상 균형을 유지하는 대칭구조 양식이라는 것이다. 아치부터 모든 구조양식이 대칭구조이다. 두 번째로는 모든 건물이 같은 재질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건물의 사용 용도에 상관없이 최소를 활용한 건축설계로 건축되었다. 철골구조를 세우고 간단하게 벽만 세우는 형식이다. 이렇게 건축한 이유는 건물이 60년 동안 석탄을 개발하고 석탄 생산을 한 다음 자동적으로 무너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광부들의 삶과 채굴작업에 대한 자부심

○ 과거 채굴을 하던 곳에서는 1950년에 만들어진 흑백영상이 상영된다. 어두운 흑백필름 안에는 이전에 여기서 어떤 작업이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하 1,000m, 30~35℃의 고온다습한 곳에서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1950년도에는 하루에 5,000명이 일하였고, 매일 다치거나 죽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광부들에게, ‘다른 일을 할 기회가 있다면 다른 일을 선택하겠냐?’라고 물어봤을 때, 광부들은 ‘아니, 난 이 일에 자부심을 느껴’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자긍심을 알 수 있었다.

지금도 노인이 되어버린 광부들은 그 시절이 최고였다고 회상한다고 한다. 보통 14살부터 광산에서 일을 시작하였고, 20살 이상부터는 직접 석탄을 채굴 하던 고된 노동을 25년 동안 하면 오른쪽 팔에 병을 얻게 된다. 신경이나 기관이 다 망가지고 폐 손상도 불러일으킨다. 이런 이유로 광부들의 평균 수명은 50세를 못 넘었다고 한다.

○ 그럼에도 그 사람들은 채굴작업에 큰 자부심이 있었고, 무엇보다 지하에서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고 한다.

요즘 독일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친구(Stern)라는 단어도 석탄 작업에서 기원하였다. 이런 협동하는 문화는 졸페라인 지역을 넘어 루르(Rhur) 지방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 당시 광부들의 직접적인 월급자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광부들은 월급의 일환으로 석탄을 공급받았다.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던 시절, 일반시민들은 월급이 석탄 값으로 다 지출되었지만 광부들은 그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광산에서 집을 임대해줬고, 집에 딸린 정원에서 야채를 재배할 수 있었다. 부인들은 여기 근방에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말 그대로 삶의 전체였다고 할 수 있었다.

○ 지나가면서 독일어로 적힌 글자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이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다’라는 말이다. 밥도 밑으로 보내주고 하였기 때문에 작업이 끝날 때 까지 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

○ 졸페라인을 재탄생시키면서 방문객에게 살아있는 역사를 전달하기 위해 과거 광부로 일했던 사람들에게 해설자로 올 것을 제안했지만 많은 이들이 거절했다. 그 이유는 예전의 영광을 지키며 일했던 곳이 다른 장소로 바뀐 것을 인정하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빈자리는 현재, 비디오로 채우고 있다.

◇ 석탄생산과정과 광부의 삶을 재현하고자 설계한 역사박물관

○ 채굴을 한 다음, 물로 세척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돌과 석탄이 구분된다. 이 과정에서 큰 덩어리로 나오게 되면 그것을 코크스(Koks)라고 한다. 코크스는 전체 석탄에서 20퍼센트 정도 비율로 사용되고 주로 제철용도로 소모된다.

이외에 작은 가루로 나오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가정용 석탄이다. 탄광에서 석탄을 채굴하고 이곳에서 선별하기 때문에 이 시설전체가 ‘석탄 공장이다.

○ 이곳의 인테리어도 컨베이어 벨트가 에스컬레이터로 대체 된 것 같았다. 전체 건물을 재설계한 사람은 렘 콜하스(Rem Koolhaas)라는 네덜란드 건축가이다. 그는 건물이 하나의 기계라고 생각하였고, 에스컬레이터라는 연결고리로 석탄이 연결되는 것처럼 설계하였다고 한다.

○ 1990년도에 재개발을 하면서 관광객들이 방문할 때, 석탄채굴과정과 동일하게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과정을 거치게 하였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루르지방의 역사박물관이다.

이때 종소리부터 사람들이 내려오는 소리, 석탄을 구분하는 기계소리같이 매일 이곳에서 들리던 소리도 재현해놓았다. 예전 광부들은 이런 소리들을 비둘기 소리라고 했다.

○ 박물관에 들어가면, 석기시대에 석탄을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오늘날의 모습까지, 루르지방의 역사를 볼 수 있다.

◇ 산업과 자연의 공존까지 고려

○ 방문객들은 이곳이 엄청난 석탄지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방문하면 주변이 모두 초록이어서 놀란다고 한다. 이곳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산업지대에 있는 훼손된 자연을 복구하기 위해서 나무도 심고 자연을 살렸다고 한다.

○ 건물밖에는 풀들이 베지 않고 방치한 것처럼 자라고 있었다. 이것은 산업과 자연의 조화를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로 만들어 둔 디자인이었다.

현재 이곳에는 약 600여개의 식물을 기르고 있다. 독일 식물만 있는 것은 아니고, 중국에서 가져와서 심은 것도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 석탄을 수출입하면서 물질에 붙어서 온 씨앗에서 자라게 된 것도 있다고 한다.

○ 주변에 조그마한 언덕들도 많이 있었다. 언덕들은 석탄채굴과정에서 나온 돌들로 만들어진 인공 산이었다. 인공 산들은 공원처럼 조성되기도 하고 산책로로 조성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앞에 약간 기울어진 건물에는 실내스키장을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20년 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과거의 것들을 재활용하고 있다.

□ 질의응답

- 아직까지 채굴할 수 있는지.

"아직까지 채굴할 수 있으나 내년부터는 더 이상의 채굴 작업이 없다. 생산원가가 판매되는 비용보다 높기 때문이다."

- 왜 다른 산업이 아닌 산업디자인을 선택했는지.

"이곳에 산업디자인을 설치하자는 제안에 따라 선택하였다. 지난 150여 년간 이 지역은 철강산업, 석탄채굴을 주로 하였기 때문에 디자인이나 예술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이런 산업이 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석탄산업이 쇠퇴하고 다른 지역과의 차별을 두고 발전시키자 했을 때 추진한 것이 예술이다.

기존에 있던 사람들은 반대도 많이 했지만, 건축사적으로 의미있는 건물들을 보았을 때, 사람들도 찬성하였고 지금은 많이들 동참하고 있다."

-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이전에 일하던 광부들은 타지역으로 떠났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황폐화된 지역에 산업디자인이라는 산업을 유치하게 할 매력은.

"먼저 첫 번째로 부지의 면적이 넓기 때문에 다양한 디자인을 실제로 적용해볼 수 있어서였고 두 번째는 졸페라인만 지닌 특이한 역사, 디자인, 건물, 지역이 건축디자인 측면과 산업디자인측면에서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 곳의 접근성이나 인프라가 좋지 못한데 어떻게 사람이 모이냐는 것이 궁금한 거 같은데 오히려 외곽지역이기에 또 다른 매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아직 100% 완성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개발되고 있고, 5년뒤에 다시오면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지금까지의 임대율은.

"현재까지는 10~15개의 회사, 예술가들만이 입주해있다. 그러나 다른 지대를 보면, 레드닷 디자인 박물관이 중심이 되어 예술가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당연히 이곳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소속되어 있다. 그 주에서 나오는 다양한 지원과 졸페라인 재단에서 나오는 예술가를 위한 지원금(주로 임대료나 시설사용료에서의 혜택)이 많이 있다."

- 건물의 디자인이 결과적으로, 권력과 힘을 보여준다고 했는데, 잘 이해되지 않는다. 어느 부분이 그런 건지 설명해줄 수 있는지.

"처음에는 바우하우스 양식의 인본주의, 민주주의 양식을 넣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철광회사라는 권력을 나타내는 건축물이 완성되고 말았던 것이다.

철강회사라는 것은 투자자들을 통해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탓에 큰 힘을 가지고 있는 회사였다. 바우하우스양식의 건축은 인간이 항상 중심에 있어야한다.

설계는 바우하우스 양식으로 하였으나 막상 건물에서는 기계로만 작업을 하였고 근로자를 위한 화장실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우하우스의 양식이 하나도 적용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 독일은 신재생에너지의 선두국가로 알고 있는데, 이곳에서 쓰는 에너지도 신재생에너지인지.

"지열을 많이 이용하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전기회사에서 전기가 들어온다. 일본 사나(SANNA) 건축회사에 지은 한 건물은 100% 지열을 에너지로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디자인스쿨(사립학교)용도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시에서 인수하여 사용하고 있다."

- 타지에서 오는 예술가들을 말고, 이 지역‧지역주민에게 주는 혜택은 없는가? 원주민, 지역과 공생을 위한 어떤 정책은.

"주민들을 위한 직접적인 지원은 없지만 노력은 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이곳은 단순히 에센지역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석탄을 채굴하던 50개 지역의 부분으로 보기 때문에 한 도시만 지원 또는 보조를 받는 것은 없다.

주민들의 의사 역시 즉각적으로 반영하기 힘들다. 프로세스 자체가 전체 국가산업이 바뀐 것으로 인해 50년동안 시행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변경사항이 바로바로 지역 주민에게 반영되기가 힘들다. 지금까지도 변경되고 있고, 새로 개발되고 있는 상태이다."

- 이곳의 철골은 예전의 것을 그대로 사용한 것인지.

"벽돌만 새로이 교체하였고, 철골구조는 원래부터 있던 것이다."

- 오염된 물은 다 퍼냈다고 했는데, 다른 오염물질들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땅에 많이 묻혀있다. 계속 관리하고 있는데, 아직까진 괜찮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면 바로 꺼내서 처리해야한다.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 지역이 지대가 하강하고 오염물이 올라오는 등 굉장히 많은 경험이 쌓여있다.

그래서 루르지역에만 있는 학과가 있다. 산업지대를 폐기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여 그 지역을 살릴 수 있는지를 공부하는 학과로 보쿰대학(Ruhr-Universität Bochum)의 애프터마이닝 학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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